칼럼 | 1차 급여 4년째 불발…잃어버린 PFS 10개월
오시머티닙(osimertinib). 비소세포폐암(NSCLC) 중 경우의 수가 가장 많은 EGFR(표피성장인자수용체) 돌연변이를 타깃으로 한 3세대 TKI(Tyrosine Kinase Inhibitor) 치료제이다. 국내에서는 한국아스트라제네카가 타그리소정이란 이름으로 공급 중이다. 타그리소의 허가 받은 적응증은 ①EGFR 엑손19 결손 또는 엑손21(L858R) 치환 변이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파라오 슬롯의 1차 치료 ②이전에 EGFR-TKI로 치료 받은 적이 있는 EGFR T790M 변이 양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파라오 슬롯의 치료 등 2가지이다. 안타깝게도 허가된 적응증 중 ②의 경우만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좀 더 풀어보면 속칭 '구(舊) 버전'인 1, 2세대 TKI(게피티니브, 엘로티닙, 아파티닙)로 치료를 시작했으나 내성이 생긴 파라오 슬롯 중에서 EGFR T790M 돌연변이가 발견된 경우에 한해 3세대 타그리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사실상 제한되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 2세대 TKI로 치료받다 내성이 생긴 50% 이상의 파라오 슬롯은 T790M 변이가 나오지 않아, 버전으로 따지자면 한참 이전인 세포독성 항암제로 2차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타그리소의 허가 적응증 ①은 월 600만원을 비급여로 자가 부담할 수 있는 환자에게만 의미 있는 1차 치료 옵션인 셈이다. 항암제 효능 평가의 핵심 지표 중 하나인 PFS(무진행생존기간)이 1, 2세대 TKI 10개월, 3세대 20개월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유전(有錢), 무전(無錢)에 따라 10개월 내외의 질병조절 가능성을 강제적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꼴이다. 경제적 수준과 질병치료 환경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2020년 기준으로 발병률 2위, 사망률 1위인 폐암을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지, 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우선 순위를 십분 이해하더라도 한 번쯤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이 약가를 참조하는 A8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 60여개국이 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가 처음부터 3세대 TKI를 투여 받을 수 있는 급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NCCN(미국종합암네트워크) 가이드라인, ASCO(미국임상종양학회) 등도 타그리소를 비소세포폐암 치료의 첫 번째 옵션으로 우선 권고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T790M 변이 환자에 한해 2차 약제로 인정될 뿐이다. 타그리소의 1차 급여 확대 안건은 2019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4차례 암질환심의위원회에 상정됐으나 판정 보류됐다. (2019.10.17~2021.11.24) 이러는 사이 1, 2세대 TKI 등으로 1차 치료에 실패한 파라오 슬롯은 '방글라데시산'타그리소 제네릭으로 효과를 봤다거나, 조직 검사에서 T790M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염원하는 처지에 빠져있다.

타그리소가 글로벌 표준치료 옵션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고 아시아인에 대한 리얼월드 데이터들이 추가로 발표된 점을 감안하면 1차 급여 확대의 걸림돌은 약값, 보험재정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돈 때문에 PFS를 변이 상황에 따라 절반씩 잘라 연장할 수 있도록 절박한 파라오 슬롯을 계속해서 방치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보험 당국은 한국아스트라제네카가 "본사를 설득"해 내놓을 약값 수준을 지켜보는 선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 효과적인 치료 옵션을 반드시 제공하겠다는 적극 행정의 자세로 대응해야 한다.
유한양행이 2021년 국내 출시한 또 다른 3세대 TKI 레이저티닙(lazertinib, 렉라자정)도 올해 1분기 중 글로벌 3상 결과를 근거로 1차 치료 허가를 신청한다. 보험 당국의 협상력에 영향을 미칠 '국내개발 신약'카드를 고려하면 적극 행정의 명분은 더욱 분명해진다. 파라오 슬롯이 첫 치료부터 20개월 안팎의 PFS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건강보험 시스템 하에서 행운이 아니라 권리이다. T790M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10개월의 가능성을 파라오 슬롯로부터 빼앗아서는 안된다.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파라오 슬롯이 1차 급여에 대한 희망으로 4년을 버텼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타그리소에, 렉라자의 행운까지 이제는 만날 때가 됐다.